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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이야기

나는 생존자였습니다......

  • 관리자 (ptcf)
  • 2021-10-25 03: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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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쩌면 시민운동가의 길을 걸어 온 생존자이기도 합니다.

 

1. 노인회장님과 그 주변 인사분들이 아셔야 하는 부분이 있어 며칠을 고민한 끝에 제 심정을 올립니다. 노인회장님의 성폭력 사건을 규탄하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 저를 대표적으로 꼽으신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비열한 뒷조사나 음해는 하지 말아 주십시오! 지금 시대는 바뀌었다는 것, 시대가치를 아직도 잘 모르셔서 그런식의 접근을 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꼭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회장님이나 주변인사들이 활발히 활동하던 군부독재 시절이나 토착 카르텔로 이익을 취했던 시절은 끝났습니다. 그런 퇴행의 시대가 반복해서도 절대로 안되는 사회로 가고 있습니다. 한 두명을 치졸한 작업으로 매도한다고 잘못된 행위가 감춰지고 선한 운동이 멈춰지지 않습니다.

 

노인회장 성폭력과 2차 가해를 바로 잡기 위한 선한 행동은 저 뿐만 아니라 수많은 단체, 시민들이 나서서 하고 있으며 저는 작은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지금은 제가 하지 않더라도 양심적인 더 많은 시민들이 나서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분들이 나서고 있어서 지금은 제가 나설 일도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저를 음해한다고 본질이 사라지거나 조용해지지 않습니다.

 

저의 활동을 막기 위해 회장님과 주변인사들이 직접 전화를 하거나 사무실을 방문해 회유도 하시고 압박도 하셨지만 저는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나서지 않을테니 스스로 문제해결을 위한 모습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 요청을 거절하셨으니 제가 나서는 것에 대해 음해나 시비를 거시는 것은 도리가 아닐 것입니다.

 

저의 활동을 막기 위해 제 약점을 찾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흠집내기를 통해 본질을 호도하고 본인들의 잘못을 덮으려고 하시는 것 같은데 이러지 마십시오. 그렇게 되지도 않지만 정말 창피스럽습니다. 이렇게까지 추해지시면 회장직을 유지하시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비웃음만 받을 것입니다. 회장님의 군대생활, 관변단체장 생활에 했던 작업행태는 이제는 더 이상 통하지도 않고 그 시대는 끝났습니다. 회장님과 주변 인사들이 지역에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조금은 아는 입장에서 회장님이 저를 공격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고, 염치가 있다면 상식에도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회장님이 군부독재 시절에 잘 나가는 군인과 관변단체장을 할 때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으며, 회장님이 토착세력의 대표자로 권력과 이익을 누리고 있을 때 저는 맑고 밝은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한 시민운동에 앞장서 왔습니다.

 

회장님과 그 주변 인사들이 제 약점을 찾아 흠집내기를 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접하며 한편으로는 분노했지만 또다른 한편으로는 제 상처를 씻어내는 계기가 될 것 같아 다행스러웠습니다. 제 약점을 찾아 시간낭비 하실 필요 없으십니다. 그리고 회장님에게 약점 잡힐 일도 전혀 없습니다. 회장님이 찾고자하고 저를 협박하는 수단으로 삼으려는 내용을 공개해 드릴테니 판단하실때 참고해 주십시오.

 

저는 회장님처럼 부유하지 않으며 단체활동을 하며 재산도 많지 않습니다. 지금도 오랜 된 아파트에서 전세로 살고 있으며, 차도 2001년식을 타고 있으며 그것도 오랜 전 후배님에게 몇십만원을 주고 구입해 몰고 있는데 지금은 폐차 직전입니다. 어떤 부동산이나 재산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회장님처럼 이런저런 비용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평택시민재단 활동을 하며 받는 활동비는 공개하기 창피할 정도의 액수(최저임금에도 훨씬 못 미칩니다)이며, 집안 생활비는 배우자가 직장생활을 통해 받는 월급으로 해결을 하고 있습니다. 회장님처럼 텃밭이나 농가주택도 갖고 있지 않아서 직원들을 동원해 농사일을 시키거나 쓰레기 청소 등 갑질을 시킬 것도 없습니다.

 

회장님은 잘 나가시던 분이라 전과가 없을지 모르지만 저는 지역과 주민과 함께하는 시민운동 특성상 몇가지 전과가 있습니다. 오래전 덕동산 환경을 지키기 위해 공사차량을 막았다는 이유로 업무방해로 고소되었지만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고, 대추리 주민들과 함께 미군기지이전확장을 막기 위한 운동을 하다 대추리 논바닥에서 연행되어 집시법 위반 등으로 벌금형, 편파적인 검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 관련 집시법 위반으로 벌금형, 젊은 날에는 평고·한광학원·평여고,동고(신한고) 등의 학교 교실에 들어가 광주학살 주범 전두환 퇴진을 주장하는 유인물 등을 뿌린 혐의로 수배, 연행 등을 당했고, 셀수 없을 정도로 많이 조사를 받고 훈방된 적이 있습니다. 쌍용차 정리해고 반대운동, 비리시의원 퇴진 운동 등의 시민운동으로 인해 고소를 받고 조사를 받는 등의 일들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도덕하고 비리에 관련되어 처벌을 받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고 당연히 그런 행위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회적 지탄을 받는 음주운전, 부정부패, 성문제 등을 일으키거나 처벌을 받은 적도 물론 없습니다.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주지 못해 늘 미안함을 안고 살았지만 돈 문제나 이권개입 등으로 구설수에 휘말린 일조차 없습니다. 회장님과 주변 인사들이 원하시면 전과기록, 재산목록을 다 공개할 수 있고, 공개에 동의할 수 있습니다.

 

사적으로는 부족한 사람이고 성찰하며 살아야 하는 여린 사람이지만 공적으로는 떳떳하고 깨끗한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회장님처럼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해 사모님이 매일 같이 출근 해 또다른 상전 노릇을 하는 단체활동은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시민활동을 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비판도 하다보니 인간적으로는 미안한 일도 많았지만 사적 감정으로 직위를 남용하거나 사익을 추구 한적은 전혀 없었습니다.

 

젊었던 시절에는 명예도 추구하고, 우쭐대기도 했지만 지금은 비우고 내려놓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주말마다 산길을 걸으며 저의 부족함을 성찰하고 비우기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시민운동을 하며 맘껏 해볼 것 다해 보고, 사회적 위치도 누려봤지만 지금은 권력, 자리, 명예, 관계를 다 멀리하고 작은 실천과 성취에 만족하는 생활이 저에게는 행복한 시간입니다. 지금은 사람 만나는 것도 가급적 피하며 현재 하는 활동을 제외하고는 다른 활동이나 행사에 참여하는 것도 절제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소박하게 저의 도움과 연대가 필요한 일에 정성을 다하는 것, 누군가는 나서야 하지만 다른 이는 나서지 않는 일을 찾아 하려 하고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장애인들, 기지촌할머니들, 인권피해자들, 아픔을 겪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왔고 살고 싶습니다. 권력, 자리, 명예, 재물, 관계에서 거리를 두고 살면서 비우고 성찰하며 치열하게 정의, 평화, 생명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싶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에게 좀더 친절한 사람으로, 위로를 받고 싶은 사람들에게 더욱 다정한 사람으로, 좋은 사람이 되어 좋은 사람들과 아름다운 동행을 하고 싶습니다. 

 

2. 회장님과 주변인사들이 저를 부도덕한 사람으로 몰기 위해 2006년 사건을 끄집어내고 있는데, 조직폭력배에게 당했던 아픈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이 저에게는 고통이지만 상처를 씻어내는 계기가 될 것 같아 홀가분하기도 합니다.

 

[경기도경의 조폭 수사결과가 많은 언론에 보도가 되었는데 그중 한겨레 기사를 소개해 드리니 참조해 주십시오!] https://www.hani.co.kr/arti/society/area/449092.html#csidxdcd03ae18fcd9acbf5ec0ff50ad0100

 

2006년도에 저는 자기관리를 철저하게 하지 못해 스스로에게 수치감을 주고, 시민운동가로서 평생을 반성해야 하고 상처속에 살아야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조폭들에게 비열한 작업을 당하고 오랜기간 고통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15년전 평택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 지역에서 활발하게 시민사회 활동가로 살아가던 시절에 조폭들의 작업에 넘어가고, 수치감으로 자살까지 하려 했던 사연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평택지역은 각종 이권에 개입된 기득권세력이 평택을 주도하면서 각종 특혜성, 비리성 개발사업으로 문제들이 많았으며 조폭들이 정치권과 결탁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 심각하던 때였습니다. 이런 각종 비리와 문제에 평택참여연대는 대표적으로 나서서 감시운동을 전개했으며, 저는 사무처장으로 활발하게 정의로운 지역사회를 위해 앞장서던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럴수록 더 조심하고 자기관리에 철저해야 했는데 친구들의 분위기에 휩쓸려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순간의 판단을 잘못한 원죄로 인해 지금까지도 상처와 한이 되고 있습니다.

 

2006년 3월경 친한 친구들에게 술 한잔 하자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고교 동창이었던 친한 친구들이었기에 저는 편한 마음으로 술자리에 나갔고 그 자리에는 친한 친구 2명과 초·중·고 동창이지만 거리를 두고 있던 친구까지 3명이 있었습니다. 아마 거리를 두고 있던 동창에게 연락을 받았다면 그 자리에 나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1차는 식당에서 만났는데 그 동창이 “은우가 어렵게 시민운동을 하고 있는데 친구들이 열심히 도와주자”고 하면서 “우린, 친구 아닌가” 하면서 분위기를 잡다보니 서로서로 친구를 외치며 술을 무척 마시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시민운동을 하면 늘 긴장을 하며 살다가 친구들 모임에서 친구들이 저를 무척 위해주는 자리가 되다 보니 저는 긴장이 풀렸고 친구들이 고마워 그 날은 못 먹는 술을 많이 마셔 무척 취했습니다. 그리고 식당에서 나와 헤어지려 하는데 그 동창이 자기가 미리 술값을 낸 술집이 있다며 기분도 좋은데 조금만 더 마시고 헤어지자고 했습니다. 저는 술에 못이길 정도로 마셔 힘들기도 해서 헤어지려 했지만 다른 친구들도 가자고 하고, 저로 인해 분위기가 깨지는 것도 미안해서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평택시청 뒤에 있는 술집이었는데 저는 그 당시에 유행하던 카페정도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나중에 문제가 되고 보니 유흥주점이었습니다. 유흥주점을 가보지도 않았고 알지도 못했는데 당시에는 무슨 술집인지도 몰랐습니다. 술집에 들어갔지만 이미 많이 취한 상태라 졸고 있었는데 어렴풋이 누군가 들어왔다가 나간 것 까지만 기억을 하고 계속 잠을 잤는데 술이 어느정도 깨 눈을 떠보니 저는 파렴치한 시민운동가로 도배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날 밤부터 조직폭력배와 어울려 유흥주점에 다니고 몹쓸 짓을 한 사람으로 인터넷 등에 난리가 났고, 특정 언론은 저를 파렴치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기사를 저에게는 단 한번의 확인도 없이 내보내는 등 동시다발적으로 저를 파렴치범으로 모는 일들이 각본을 짠 것처럼 순식간에 벌어졌습니다. 나중에 경찰수사로 드러났지만 모든 것이 조폭들의 치밀한 작업이었습니다.

 

그날 밤부터 저는 지역에서 얼굴을 들 수 없는 파렴치한 시민운동가로 낙인이 되었으며, 사퇴를 하면 조용히 넘어가겠단 온갖 협박을 그 조폭관련 동창에게 지속적으로 받았습니다. 그 동창은 초·중·고 동창이면서 평고를 들어갈 때 입시고사에 내 뒤쪽에 앉아 제 답안지를 컨닝해 평고에 합격까지 했는데 그 동창이 조직폭력배 신전국파의 행동대장으로 나를 함정에 빠트려 시민운동을 못하게 하려고 치밀한 작업을 했다는 것을 훗날 알고 저는 심한 충격과 배신감을 받았습니다. 그 때 만났을 때는 그 정도로 그 동창이 조폭생활을 하고 있을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고, 그 동창은 2월달에 있었던 평택참여연대의 후원의 밤 행사에 와서 후원금도 내고 후원회원 가입까지 했는데 다 저를 안심시키기 위한 치밀한 사전 작업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친구들의 분위기에 휩쓸리고 조폭들의 작업에 넘어가 유흥주점에 간 것은 시민운동가로서 부적절한 행위입니다. 당시에는 유흥주점인지도 몰랐지만 그 점은 지금까지도 늘 반성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괴롭습니다. 왜 더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못했는지 너무나 후회스럽습니다. 몇 년 뒤 경기도경 수사결과로 모든 부분이 밝혀지기 전까지 저는 어떤 변명도 하지 못하고 수치감과 우울감에 시달리며 냉가슴으로 지내야 했습니다.

 

당시에도 제가 당했다는 것을 여러 정황상 알았지만 항변할 수 있는 여지는 없었습니다. 조폭 행동대장이었던 동창은 계속적으로 저를 협박했으며 그 사건이 벌어진 뒤 며칠 후 저는 평택참여연대 사무처장을 사퇴하고 한동안 야인생활로 죽음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수치심과 분노 등으로 견딜 수 없는 시간을 보내다 어느 날은 자살을 하기 위해 대추리의 평택호 강변에 갔지만 용기가 없어서 한동안 강물을 바라보며 눈물만 흘리다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자살을 하러 갔지만 차마 여러 인연들이 떠올라 그럴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당시 평택은 조폭들이 정치권과 결탁해 각종 이권사업에 개입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정치권을 비판하고 개발사업 반대에 앞장 선 저를 조폭들이 죽이기 위해 작업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저의 순진함과 동창관계까지 이용해 비열한 방식으로 저를 무너뜨리기 위한 작업에 당한 저의 불철저함은 두고두고 후회가 됩니다.

 

나중에 수사결과를 보니 이런 방식에도 제가 당하지 않으면 교통사고를 가장해 저를 차로 밀어서 활동을 못하게 하는 시나리오도 있었다고 하던데 차라리 그들에게 교통사고를 당해 비록 생명이 끊기더라도 교통사고를 당했으면 저는 마음이 편했을 것 같습니다. 시민운동가에 그들이 행한 행위는, 작업은 너무나 치욕적이고 견디기 힘든 상처였기 때문입니다.

 

“모난 돌과 바위에

부딪혀 다니는 것보다

같은 물에 생채기

나는게 더 두려워

강물은 저토록

돌고 도는 것이다.

바다에 처음 닿는

강물의 속삭임처럼 긴장하며

나는 이토록

아프고 아픈 것이다“

-이산하, 악의 평범성, <강>-

 

그 당시에 벌어졌던 아프고 고통스러운 일들을 다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조폭들에게 당했던 협박들, 믿었던 사람들에게 느꼈던 배신감과 아픔을 다 끄집어 내는 것도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영화의 한 장면도 이렇게 모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은 드러나고 억울함은 풀어진다고 하던데 2006년 사건이 있고 4년 뒤 경기도경 광역수사대 수사로 조직폭력배들이 한 시민운동가를 매장시키고 죽이기 위해 했던 비열한 범죄행위가 낱낱이 밝혀졌습니다. 사전에 조폭 두목에게 지시를 받은 신전국파 조폭들이 저를 제거하기 위해 치밀한 각본을 짜고 저와 친한 친구들까지 파악하여 미리 동선까지 만든 뒤 언론, 검경, 정치권 인적 카르텔까지 활용하여 조직적으로 저를 죽음 끝까지 몰아세운 사건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입니다. 열심히 착한 시민운동을 한 시민운동가를 그들의 이권개입에 장애물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상상하기도 어렵고 일어나기도 어려운 방식으로 저를 벼랑끝으로 밀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 때 상황을 떠올리면 치가 떨립니다. 평택이라는 곳에서 시민운동을 하고 있는 제 운명이 너무나 슬퍼집니다.

 

경기도경에서 있었던 수사결과 발표 기자회견에 피해자로 참석한 저는 통곡했습니다. 그동안의 고통과 슬픔이 떠올라 저는 통곡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맘 고생으로 불면의 밤을 지세웠던 일들이 떠올라 통곡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사를 했던 경기도경 수사관에게 “제 한을 풀어주어 고맙다”고 하고 돌아오고 나서도 며칠동안 저는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그 때 일이 떠오르는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조폭들과 연관되었던 사람들을 지금도 마주치는 고통의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저는 그 사건 이후 초중고 동창모임에 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못나가는 것이겠지요. 조폭 행동대장으로 버젓이 친구를 죽이기 위해 작업을 했던 동창은 그 후 각종 혐의가 드러나 구속이 되고 교도소도 다녀왔지만 끝내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금도 동창모임에서 임원을 맡아 활동을 하고 있으며, 동창들은 그와 희희낙락하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저에게는 끔찍한 고통입니다. 악몽에 시달립니다. 그를 보면 심장이 벌렁거리는 저를 보고 울게 됩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2차 피해를 겪으며 어떤 심정이었을지 충분히 공감이 됩니다. 정말 괴롭습니다.

 

사람에게 상처도 받지만 사람에게 위로도 받는다고 하던데 저는 마음속 상처가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으며 다시 용기를 냈던 것 같습니다. 믿어주고 위로를 해주었던 분들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분들 덕분에 다시 평택참여연대에 복귀를 할 수 있었으며 지금까지 시민사회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쓰러졌던 저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던 또다른 계기는 대추리 들녘, 대추리의 아버님, 어머님들의 사랑이었습니다. 저는 2006년도에 평택참여연대 사무처장을 사퇴하고 도망치듯 대추리에서 한동안 살다시피 했습니다. 저의 불철저함을 성찰하며 극복하고 싶었습니다. 몇년동안 대추리 투쟁을 하며 다시 용기를 얻었으며, 대추리 아버님, 어머님들과 함께 하며 위로를 받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대추리 아버님, 어머님들에게 약속드렸던 대추리를 미군기지로부터 지켜 드리지 못한 점은 지금도 죄송합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마음 속 한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슬픔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사건 이전과 그 후로 저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을 잘 믿지 못하게 되었고 다가서는 사람들이 부담스러워졌습니다. 외향적 성격이 내성적 성격으로 변화되었고 주춤거리는 소극적 버릇이 생겼습니다. 정말 편하지 않으면 술 한잔도 너무나 부담스러운 자리가 되었습니다. 삶은 피폐화되고 사람을 대할때 건조해졌습니다. 어쩌면 그 사건이 없었더라면 저는 더 좋은 시민운동을 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더 당당한 사람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더 행복한 사람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더 웃는 날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에게 더 다가가는 사람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저는 2006년 조폭들에게 당했던 사건뿐만 아니라 척박한 평택에서 시민운동을 하며 수많은 유혹과 협박 등을 받아 왔습니다. 어떠한 유혹과 협박에도 겁을 내거나 두려워하거나 굴복하지 않았는데 동창, 친구관계를 이용한 작업에는 속절없이 당했습니다. 너무나 후회스럽고 수치스럽습니다.

 

평택에서 30여년이 넘게 시민운동을 하며 보고 겪은 온갖 사람들의 이면의 행태, 정치권의 비사, 시민운동가의 비애, 시민운동사 등 수많은 사연과 이야기를 언젠가는 다 말 할 수 있는 날이 있겠지요. 평택 풍토에서의 정직한 시민운동은 정말 힘들고 어렵습니다. 외로움을 즐겨야 하며 욕심을 비워야 합니다. 늘 수도자의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평택에서의 시민운동은 무언가를 계속 끌어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의 길처럼 힘들고 외로운 삶의 길입니다. 저는 어쩌면 시민운동가의 길을 걸어 온 생존자이기도 합니다.

 

노인회장님과 주변 인사들 덕분에 저에게는 지금도 한으로 남아 있는 2006년 사건을 다시 세상밖으로 끄집어 낼 수 있었습니다. 상처를 끄집어 내 말해야 치유와 극복이 된다고 하는데 회장님 덕분으로 담고 있던 상처와 한을 말하고 나니 좀 홀가분해 집니다. 지금도 조폭동창의 함정과 작업에 넘어 간 나의 못남을 후회하고 있으며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인회장님과 주변 인사들이 저의 활동을 막기 위해 이 사건을 이상하게 이용하려는 것은 매우 치사한 행위이며, 또다른 조폭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다고 노인회장님의 성폭력 범죄행위가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더 회장님의 그동안 치부만 드러나는 꼴이 될 것입니다. 회장님과 주변 인사들이 지금 보여야 할 자세는 피해자와 함께하는 사람들 약점이나 찾고 흠집내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반성하고 성찰하고 결자해지를 하는 것입니다.

 

3. 요즘 많이 착잡합니다. 어디까지 지역사회가 망가지고 부끄러워져야 평택노인회장이 책임을 통감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하며 결자해지를 할지 개탄스럽습니다. 지역의 모범이 되고 존경을 받아야 할 노인회장과 일부 인사들이 아직도 세상이 변화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과거의 잘못된 인식에만 머물러 있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습니다.

 

노인회장의 성폭력, 갑질 문제가 사회문제화되고 혐의가 인정되어 검찰로 송치까지 된 상황에서도 노인회장님과 주변 인사들은 잘못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아니 문제의식조차 갖지 않으면서 피해자를 겁박하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사람들을 매도하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단체의 모습은 결코 아닙니다. 어느 단체보다도 더 모범이 되어야 하는 노인회이기에 성폭력 범죄에 대해 더 엄격해야 하고, 부끄러움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시민들이 존경하고 후배들이 따를 수 있을 것입니다. 제발 지혜로운 처신과 성숙한 문제해결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저부터도 9월달에 피해자들이 처음 사무실을 방문해 도움을 호소할 때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노인회장님의 행위에 분노감은 들었지만 이런 내용들이 공론화될 경우 지역사회가 너무나 망신스러워 질 것 같아 망설임이 있었습니다. 이 정도 상황이 되었으면 노인회장 스스로 사퇴를 하고 결자해지 할 거라는 일말의 기대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해자는 점점 대담해지고 피해자들은 2차 피해로 고통이 심각해지는 상황들을 보면서 더 이상 외면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침묵과 외면은 가해자를 옹호하고 공범자가 되는 것이기에 적은 힘이라도 함께하고 나서는 것이 정의이고 상식이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타인의 아픔에 함께하는 것이 공동체의 연대이고,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것이 시민활동가의 숙명이라는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더 이상 지역사회가 수치스럽고 창피스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나서서 문제를 바로 잡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 들었습니다. 그래서 피해자들과 함께 하며 피해자들이 더 이상 고통을 겪지 않도록 노인회장과 주변 인사들의 성찰과 결자해지 모습을 촉구하게 된 것입니다. 이번 사태를 교훈삼아 지역사회가 좀더 성숙한 사회로, 성폭력 없는 공동체로 가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소명의식도 갖게 됩니다.

 

피해자들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 저는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동질감과 유대감을 깊이 공유합니다. 피해자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주시고 측은지심의 마음으로 함께 해 주시는 것이 필요할 때입니다. 함께 하고 있다는 유대감이 피해자들을 다시 설 수 있도록 해주는 힘이 될 것입니다.

 

4. 노인회장님과 주변 인사분들에게 간곡히 호소 드립니다.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를 멈춰 주시고, 사퇴 등 결자해지의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피해자와 연대하고 있는 단체나 시민들에 대한 회유나 겁박, 음해를 중단하시고 어른다운 노인으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노인회장님과 주변 인사분들이 지금 보이고 있는 인식과 행태는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퇴행의 모습입니다. 지금도 창피스러운데 더 이상 창피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망신스러워졌으니 끝까지 가자”, “성추행한 사실이 없고 있다한들 무엇이 문제냐. 노인에게 이렇게 대우를 해도 되는 것이냐.”, “직원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이은우의 약점을 찾아서 맞불을 놓자” 등의 이야기들이 들릴 때마다 너무나 부끄러워집니다. 평택이라는 곳을, 지역의 노인들을 타 지역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워집니다.

 

그동안 지역사랑을 얘기하셨던 것이 진심이시라면 지역을 위해서도, 자녀들을 위해서라도 그만 욕심을 내려놓아 주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지역을 위한 길이고, 남은 삶을 그나마 덜 수치스럽게 마무리하는 것인지 현명하게 판단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계속 이런식으로 가시면 피해자들이 가장 고통의 시간을 보내겠지만 평택 지역사회가 너무나 많이 수치스러워 질 수밖에 없습니다. 평택의 이미지와 공동체의 상흔을 생각하면 이번 문제를 공론화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제발 이러지 말아 주십시오. 이런 모습은 정말 아닙니다.

 

5. 노인회장님과 주변 몇몇 인사분들이 결자해지를 하지 못하고, 공동체를 절망의 수렁으로 몰아가고 계시니 이제는 지역 공동체가 나서서 불의를 바로잡고 상식과 기본이 바로 선 지역, 성폭력 없는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한 선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도 질긴 과정이 될 것 같습니다. 분노할 때 침묵한다면 그 피해는 침묵하고 있는 모든 시민에게 돌아옵니다. 지금은 분명히 지역사회가 분노하고 피해자를 지켜줘야 할 때입니다.

 

지역사회를 올바르게 세우기 위해 지역의 시민사회단체, 정당, 시민들의 관심과 연대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지역의 여론을 모으고, 피해직원들을 지지하면서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고 노인회 정상화를 위한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한 분 한 분의 작은 실천과 연대의 마음의 절실히 필요할 때입니다.

 

요즘 많이 지역사회를 생각하다보니 두서없이 글을 썼습니다. 생존자로 살아남아야 하고 살아남는 지역풍토는 이제는 끝내야 한다는 것, 정말 바뀌어야 한다는 마음 간절합니다. 목소리를 높이는 일 보다 공동체와 이웃을 향한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일을 하는 것이 저에겐 소망입니다. 

 

"피어있는 것만이 꽃이 아니라

지는 것 또한 꽃이다.

꽃은 필 때도 아름다워야 하지만

질 때도 고와야한다.

지는 꽃도 꽃이기 때문이다."

-법정스님-

 

 

2021년 10월 25일

평택시민재단 이은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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