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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햇살사회복지회 소식지에 실렸던 글인데 올해도 이모님들(기지촌할머니)과 함께 속초 여행을 준비하면서 마음 나누고 싶어 공유합니다. 2월 24일부터 속초 여행비 마련 시민모금을 시작하려 하는데 올해도 손을 잡아 주시면 큰 힘이 될 거예요.
이렇게 이모님들과 삶의 길을 가려 한다.
이 은 우(평택시민재단 이사장)
1. 다른 척 살았던 우리들...
아버지가 의정부, 평택의 미군기지에서 일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고, 안정리 험프리 기지에서 정년퇴직을 하셨기 때문에 나에게 미군기지는 매우 익숙한 단어이고, 그로 인해 혜택을 받아 온 삶이었다. 미군 트럭을 쫓아가며 ‘초코렛’을 외쳤던 어린 시절에는 기지촌이 뭔지 알지 못했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가 평택에서 왔다고 하니까 동기들이 대번 ‘기지촌’에 대해 질문을 하며 편견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면서 미국, 미군기지, 기지촌의 역사와 삶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고, 남의 일로 여기고 외면했던 기지촌의 삶이 나와는 무관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혼혈아이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 친구들을 우리와는 다른 사람으로 여기고 왕따를 시키기도 했다. 미군부대에 들어가서 스테이크 먹었다는 얘기를 자랑으로 여기고, 미제 물건을 부러워하고 선물로 주고 받았던 평택사람들은 자신과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며 미군과 어울리는 여성들을 ‘양색시’, ‘양*주’라 비아냥거리며 차별하기도 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우리네 모습이고, 아픈 역사였던 것이다.
대학시절 여름방학 때 팽성파출소에서 방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어느 날 약물에 취해 파출소에 연행되어 온 누이가 있었다. 미군과 결혼을 전제로 안정리에서 동거를 했는데 아무런 말도 없이 미군이 본국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그 상처로 약물에 취해 파출소에 온 것이었다. 파출소장은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양*보라 멸시하며 욕설만 하는 것을 보면서 분노감이 솟구쳤다. 그러나 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나의 비겁함이 마음에 걸린다. 그 누이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행복했으면 좋겠다.
2. 햇살과 이모님들과의 인연...
대학 졸업 후 평택에서 청년운동, 시민운동을 하면서 한동안은 미군기지 문제에만 관심을 갖고 활동을 하며 기지촌여성의 삶은 접하기도 어려웠고, 잘 알지도 못했다. 그러다 평택에도 기지촌여성 지원단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2006년 우순덕 원장님을 만나게 되면서 잊고 있던 기지촌여성 문제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었다. 평택참여연대 활동을 할 때는 원장님께 ‘민들레 홀씨’상을 드리면서 지역사회에 기지촌여성과 함께 하고 있는 햇살센터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그 후 할머니들의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연대기구를 만들어 도움을 드리려 했던 기억이 어제 같은데 벌써 18년이 지난 추억이 되었다.
평택참여연대 활동 이후 잠시 방랑기를 거치고 평택시민재단 활동을 하며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던 중 지역사회의 편견과 외면 속에 외롭게 활동을 하고 있던 햇살사회복지회와 손을 잡게 되고, 지역사회가 관심을 갖지 않았던 기지촌여성 지원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다. 처음 시작한 사업은 손잡기 여행이었다. 상처가 많았던 이모님들에게 여행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치유와 평화의 효과가 있을 것 같아 겁 없이 시민들의 후원을 조직해 2017년 제주도 여행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매년 강릉, 군산, 부산, 경주, 여수 등 전국을 다니고 있다. 갈 때마다 아프고 돌아가시는 이모님이 생기다 보니 참여하는 이모님 숫자가 줄어들고 있어 안타깝지만 한 분의 이모님이 계실 때까지 멈추지 않으려 한다. 여행을 할 때는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엄숙자 이모님 등 함께 했던 이모님들 얼굴이 떠올라 가슴 아프다. 여행뿐만 아니라 계절별로 당일치기 여행이나 식사모임, 추석맞이 잔치, 선물 전달, 영화보기 등 최선을 다해 이모님들과 함께 하려고 정성을 다했던 시간이었던 같다. 시민재단으로 들어오는 후원물품이 있으면 무조건 이모님들에게는 1순위로 전해 드리려 하는데 요즘은 예전처럼 잘 들어오지 않고 있어 죄송스럽다.
2018년도에는 중점사업으로 전국적으로 대표적인 기지촌을 형성했던 평택에서부터 기지촌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의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고, 차별과 편견 해소, 진정한 인권 회복과 현실적인 지원체계 마련을 위해 ‘미군위안부(기지촌여성)지원 조례 제정’ 운동을 시작하였다. 시민과 함께 만드는 조례를 위해 다양한 시민들의 참여로 기지촌여성지원조례연구모임을 만들어 조례안 작성과 조례 제정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혐오와 차별에 젖은 일부 사람들은 할머니들의 손을 잡아 주지 않았으며 오히려 심한 모욕과 난동으로 조례 제정을 막아 할머니들에게 심한 상처를 주었다. 그 때 할머니들의 눈물과 상처를 보면서 너무나 죄송스러웠고 당사자인 할머니들에게 고통을 준 것은 아니었는지 지금도 마음의 아픔이 남아 있다. 지역사회 갈등이 심화되며 조례 추진은 멈춰 서게 되었고, 또다시 할머니들에게 상처가 생기는 일이 발생할까 걱정이 들어 현재까지도 다시 추진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조례 제정 운동을 하며 나 역시도 상처가 생겼고, 지역사회에 대한 환멸감으로 한동안 우울함을 앓아야 했다. 그 사건 이후 나는 기지촌할머니들을 위한 제도적 변화, 인권회복을 위한 운동을 잠시 마음 속에 접어두기로 했다. 할머니들을 위해 추진한 조례 제정 활동이 오히려 할머니들에게 상처가 되었다는 좌절감으로 그 이후부터는 봄·여름·가을·겨울 이모님들과 함께 여행도 다니며 잔치도 열고 종종 뵈며 수다(?)를 떠는 것으로, 햇살사회복지회의 환경개선 및 활동 지원, 이모님들이 요청하시는 사안을 해결해 드리는 것으로 활동방식을 바꿨고, 이모님들과 우애와 정을 나누며 이렇게 삶을 살아가기로 했다. 제도, 인식 전환을 위한 사회적 운동을 통해 할머니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끝장내고 싶은 욕구는 강하지만 지금도 기지촌할머니라는 표현조차도 불편해 하시는 이모님들이 많은 상황에서 조급한 운동적 실천보다는 함께 하며 멀리 가려고 한다.
그래도 기지촌여성평화박물관 추진단장을 맡아 개관을 할 수 있도록 작은 힘 보탤 수 있어서 좋았고, 최설화 관장님을 비롯하여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해 이모님들과 함께 하며 기지촌여성 인권 문제 공감대 형성과 인식 전환, 기억과 보전의 중요한 역할이 잘 진행되고 있어서 평화로운 세상이 시나브로 올 것이라는 희망 생긴다.
3. 덜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안아주는 것이 행복한 공동체다.
‘병덩어리’ 몸과 가난, 끔찍한 낙인의 고통 속에서 평생을 살아낸 고령의 기지촌 할머니들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 함께 할 시간이 슬프게도 얼마 남지 않았다. 정 들었던 이모님들의 별세 소식, 암 투병을 하고 있는 이모님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등산을 하며 묵상을 할 때 그 분들 떠올라 그립기도 하고 마음 아프기도 하다.
이제는 거창한 목적을 갖지 않는다. 그냥 이모님들과 할 수 있을 때까지 즐겁게 여행도 다니고 재미난 만남도 가지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다. 남아 있는 삶 동안 가족과 지역사회와의 화해를 도모하고, 삶의 질 향상을 통해 행복하게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 갈 수 있도록 나는 묵묵히 이모님들과 함께 길을 가려 한다. 나와 같이 평택에서 살고 있는 이모님들이 차별과 아픔을 견뎌내며 생긴 가슴 속 응어리를 풀어내면서 삶의 주인공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나는 따뜻한 손잡기 사업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타자의 아픔에 선을 긋지 않는 것. 그 공감의 연대가 지역사회를 아름답게 물들이는 새로운 평택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 더욱 노력하려 한다. 이모님들의 손을 잡고 혐오와 차별이 없는 세상을 위해 ‘모두’가 햇살이 되길 소망한다.
*아래는 작년 봄 이모님들을 모시고 갔던 여수 2박3일 여행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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